레프 야신은 그의 옆집에 살았다. 이것이 라치오 골키퍼, 이반 프로베델이 써내려온 이야기다. 그의 어머니 엘레나는 러시아 출생으로, 유일하게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골키퍼의 이웃집에서 살았다.
"제 조부모는 그 거리에 살곤 했죠. 서로 잘 알던 사이였어요.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는 옆집에 엄청난 골키퍼가 살던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 프로베델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단 1년 후, 나는 그의 위상에 대해 잘 실감하게 되었어요"
스포츠 작가들은 운명을 이야기로 풀어 쓰는 경우가 많으며, 1994년에 태어난 젊은 프로베델이 친척들로부터 150번 이상의 페널티킥을 막아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10대 시절 잔루이지 부폰을 보며 자란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쉽다. 부폰은 이탈리아가 1998년 월드컵에 에 진출하기 위해 디나모 모스크바의 경기장에서 눈 가득 오던 날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아쉽게도, 프로베델은 꽤 늦게까지 골키퍼를 맡지 않았기 때문에 야신이라는 이름은 그가 훨씬 더 나이를 먹을 때까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물론, 나중에 이 포지션은 그의 관심을 끌었다. "저는 유로 2000에서 프란세시코 톨도와 사랑에 빠졌어요. 그가 네덜란드를 상대로 한 세이브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나요. 그 경기의 비디오테이프를 너무 많이 봐서 거의 닳아버릴 지경이었습니다" - 프로베델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하지만 프로베델은 갈등했다. 무엇보다도, 누가 골키퍼를 하고 싶겠는가? 몇년 동안 그 포지션은 저평가 당해왔다. 월드 레코드 이적료를 갱신하며 파르마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한 부폰의 기록은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고, 발롱도르 투표는 슛 스토퍼가 아닌 골 득점자와 마술사들에게 돌아갔다. 부폰 본인은 야신의 발롱도르가 소련과 서방 사이의 관계가 흐루시초프 해빙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었다.
"15살 까지 나는 스트라이커였다. 경기당 득점 기록은 실로 괜찮았었다" - 프로베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스트라이커의 두뇌는 골키퍼에게도 반드시 도움이 된다. 그들의 의도를 읽는 것은 반응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찰나의 순간은 더이상 빛의 속도처럼 느껴지지 않으며, 프로베델은 이탈리아에서 엘리트 슛 스토퍼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지난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골키퍼 이름에도 올랐으며, 이는 프랑스의 새로운 넘버원 골리 마이크 메냥, 챔피언스리그 결승 골키퍼 안드레 오나나, 토트넘의 기예르모 비카리오를 제친 기록이었다.
세리에 A의 선택에 질문을 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프로베델은 21번의 클린시트를 기록했는데 - 다른 골키퍼들보다 최소 5회가량 더 많고, 가장 높은 선방률을 기록하여 라치오가 나폴리를 이은 2위 자리에 올라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복귀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네 시즌에 네 팀의 서로 다른 챔피언이 있는 불안정한 리그에서, 일부 사람들은 올해가 세리에 A에서 라치오의 해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레체 원정 패배는 그들의 꿈에 이른 제동을 가했고, 승격팀 제노아에게 충격패를 당하기도 했다. 디펜딩 챔피언 나폴리를 이긴 것은 지난 시즌 좋았을 때의 라치오를 엿볼 수 있었지만 유벤투스전은 그 결과를 변수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비안코셀레스트리는 60년 전 이후 처음으로 리그 첫 4경기에서 3패를 당했다. 만약 너가 왜냐는 이유를 묻는다면, 스포츠 디렉터가 없었던 이적시장을 꼽을 수 있었을 것이다. 휴고 요리스의 영입을 고려하며 프로베델의 거취를 흔들고,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를 알 힐랄에 팔고, 그의 대체자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전혀 다른 스타일인 카마다 다이치를 영입했다.
이 밤은 라치오가 16년 만에 홈 관중들 앞에서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룬 날이었고, 아무도 잊지 못할 날이었다.
프로베델은 아틀레티코 윙어 사무엘 리누의 슛을 막아내며 라치오가 승점을 획득할 기회를 유지했다. 터치라인에서는 디에고 시메오네가 믿을 수 없다는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세기의 전환기에 라치오의 마지막 리그 우승 주역이었던 시메오네에게 쿠르바 노드가 그를 위해 제공한 환영 인사는 전 라치오 선수를 감동시켰다. 그러나 경기가 진행되면서, 그의 감동은 좌절감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경기를 끝낼 기회를 놓쳤다" - 고 그는 한탄했다.
아틀레티코는 내려앉아 버티기로 결정했고, 라치오 감독 마우리시오 사리에게는 너무나 혐오스러운 스타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이 스타일을 채택하기보다는 패배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꽤나 효과적이었다.
아틀레티코가 당한 모든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양보할 것 처럼 보이지 않았다. 라치오의 윙어 마티아 자카니와 펠리페 안드레송은 이번 시즌 아직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밀린코비치-사비치의 부재로 팀은 상대 페널티 지역에서의 존재감이 부족해졌다. 사리는 놀랍게도 지난시즌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4골을 넣은 스트라이커, 타티 카스테야노스를 투입하지 않기로 결장했다.
다양하게도, 섭리의 순간이 찾아왔다
훌륭한 골키퍼의 본능은 훌륭한 스트라이커의 본능과 유사하며, 프로베델은 아틀레티코와의 경기 추가시간에 이를 보옂주었다. 그는 코너킥의 세컨볼 상황에서 노란 유니폼을 입은 채로 아틀레티코 수비진 뒤로 뛰며 루이스 알베르토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했다. 이것은 경기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키퍼가 골을 넣었기 때문에 운이 좋았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질 자격이 없었다" - 마우리시오 사리
프로베델이 이전에 이와 같이 해왔던 일은 얼마나 행운일까?
이는 골키퍼로서 그의 첫 골은 아니었다. 29세의 이 선수는 몇 년 전 유베 스타비아 소속 당시 아스콜리와의 경기에서 승점 1점을 구해냈고, 94분 헤일 메리에서 한 번 더 응답했다. "잘 진행되었다" - 그는 시원하고 침착한 골키퍼, 특히 가장 유명한 디노 조프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지역은 베네치아의 전형적인 사람들처럼 과묵하게 말했다.
"그의 골은 올림피코를 열광시켰다. 믿을 수 없다. 보기 쉽지 않은 광경이다" - 자카니는 경기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제로도 드문 일이다. 프로베델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득점한 네 번째 골키퍼가 되었고, 오픈 플레이에서 득점한 두 번째 골키퍼가 되었다.
전 스페치아 골키퍼는 자신이 흉내낼 수 있을 만큼, 지난 몇 년 동안 밀린코비치-사비치의 후반 득점을 충분히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을 내세우고 싶지 않는다" - 프로베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로베델의 팀 동료들은 그의 어깨를 쿠르바 노드로 향했고, 화요일 밤 그는 그의 손자에게 이야기할 거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야신의 모스크바 이웃들은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나중에야 깨닫게 될 것" - 프로베델은 이와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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