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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축구

[더 타임즈] 제시 린가드 - 가족의 아픈 사연, 그리고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

by 집도리1 202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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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 미드필더 제시 린가드가 FC 서울로 새롭게 출발하게 된 배경에 있는 아픈 사연을 공개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의 새로운 시작과 새 집에 대한 열정을 나누며, 과거 어려움을 극복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침내 글을 쓰네요. 많은 사람들이 왜 제가 프리미어리그를 떠나 한국의 K리그로 왔는지 궁금해했지만, 저는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원했습니다. FC 서울과 2년 계약을 맺은 이유는 단순히 한 시즌을 뛰기 위해서가 아니라, 팀에 트로피를 안기고 제 유산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일요일 광주전에서 골을 넣었을 때, 다섯 경기가 남은 지금 부상에서 회복되어 제 기량을 되찾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1년 전, 저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죠. 모든 축구 선수들 뒤에는 대중이 모르는 이야기가 있고, 제 이야기를 통해 다른 선수들이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마지막으로 뛴 팀은 노팅엄 포레스트였어요. 이 팀과 팬들을 정말 사랑했지만, 2022년에 그들이 승격된 후 1년 계약으로 합류했을 때, 출전 보너스가 높은 조건이었죠. 그러나 포레스트는 리그의 수익성 및 지속 가능성 규정(PSR)에 대한 걱정이 있었고, 시즌이 진행되면서 지출을 제한할 필요가 생겼어요. 그런 이유로 특정 경기에서 제가 출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또한 신체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거의 시즌 내내 무릎과 아킬레스건에 심한 건염을 앓았어요. 때로는 고통을 참으며 뛰었고, 다른 때는 통증이 너무 심해 출전하지 못했죠. 이런 문제들은 저의 감속 능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상대를 스쳐 지나가거나 빈 공간으로 달려가 멈춰서 방향을 바꾸는 순간들, 이런 플레이가 제 경기 스타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여름에 계약이 끝났을 때즈음 저희 할머니께서 병환이 있으셨어요. 어릴 때 어머니가 오랫동안 우울증과 싸우는 동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저를 키워주셨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해 조금 말씀드릴게요. 할아버지는 정말 독특한 분이세요. 영국 챔피언 역도 선수셨고, 제가 어렸을 때 아스트로터프 경기장에 데려가 축구의 기본을 가르쳐주셨어요. 그리고 유소년 경기 때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저를 데려다주셨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상관없이 항상 터치라인에 계셨습니다. 한 번은 경기장에서 퇴장당하신 적도 있었어요. 그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2세 이하 경기였는데, 스토크 시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저희가 잘 못하고 있었죠. 할아버지가 갑자기 경기장에 들어오셔서 우리 어린 선수들에게 "너희들은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을 자격이 없다"고 꾸짖으셨죠! 할머니는 더 차분하고, 마치 든든한 버팀목 같은 분이셨어요. 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셨죠. 한 번은 맨유가 뉴캐슬과 FA컵 결승전을 할 때 저를 기차에 태워 런던까지 데려가셨어요. 경기 티켓을 살 형편은 안 됐지만, 웸블리 경기장 밖에서 팬들과 어울렸죠.

 

할머니는 워링턴 병원에서 일하셨는데, 메스 관리 같은 일을 하셨어요. 우리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셨죠. 저는 할머니의 신용카드에 완전히 매료됐었어요. 할머니가 그 카드로 저에게 예쁜 축구화를 사주셨는데, 나이키 머큐리얼 베이퍼였어요. 프로:다이렉트 사커에서 £140에 산 거였죠. 저는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어요. 그 카드가 마치 무한한 마법의 카드처럼 뭐든 살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작년 여름 동안 할머니의 건강이 많이 악화되셨어요. 병원에 들락날락하셨고, 저는 열심히 훈련을 하면서도 팀에 속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때 계약이 없었던 게 신의 뜻처럼 느껴졌어요. “너에게 지금은 새로운 팀을 주지 않을 거야, 집에 머물면서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그래서 저는 할 수 있는 한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1월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할아버지는 그 충격을 크게 받으셨어요. 우울증에 시달리며 어지럼증까지 겪으셨고, 결국 병원에 입원하셨죠. 할아버지도 돌봐야 했고, 장례식을 준비하고 추도사도 해야 했습니다.

 

 





저는 모든 일이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가족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동안, 제가 축구에서 잠시 휴식하는 것도 예정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작년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서, 복귀를 준비할 때가 되었어요. 저는 개인 훈련을 위해 두바이로 갔고, 체육관 코치 닉과 축구 트레이너 자인과 함께 훈련을 받았어요. 훈련은 매우 엄격했죠. 하루에 두 번씩 세션을 진행했고, 사교 활동도 없었고 술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축구, 축구뿐이었어요. 다시 공에 익숙해지고 몸 상태를 최고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죠.

 

다음 팀을 찾을 때, 제가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맨체스터로 돌아온 후, FC 서울의 주요 관계자 두 명이 저를 보기 위해 맨체스터까지 와서 훈련하는 모습과 5대5 경기를 지켜봤죠.

 

한국이라는 아이디어가 저를 끌어당겼어요. 단지 다른 도전뿐만 아니라 새로운 환경과 문화였으니까요. FC 서울은 K리그에서 가장 큰 클럽 중 하나이고, 훌륭한 경기장을 갖춘 팀이라 저는 바로 수락했습니다.

 

 




 

시즌은 3월에 시작되었고, 제 첫 홈 경기에 52,000명의 관중이 몰렸어요. 이는 한국 축구 역사상 구단 최다 관중 기록이었죠.(역자 주 : 정확히는 K리그 유료 관중 도입 이래 최다 관중이고 이 기록은 두 달 후에 서울과 울산의 경기에서 52,600명이 들어오면서 깨짐. 참고로 K리그 역대 최다 관중은 2010년 서울과 성남의 경기에서 기록한 60,747명) 하지만 두 경기 후에 제가 반월판 부상을 당해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복귀한 건 5월이었지만, 21경기에서 5골과 2도움을 기록하며 팀에 기여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리고 내년 시즌은 더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해요.

 

여기서의 생활은 정말 환상적입니다. 저는 서울의 멋진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건물 최상층에 있어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어요. 경치는 저에게 아주 중요하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도시를 탐험했고, 물론 김치 같은 현지 음식도 맛봤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발견은 좋은 이발사를 찾았다는 거예요. 제 절친 중 한 명인 써니는 영국에서 자주 찾아오고, 제 딸 호프도 방문했어요. 우리는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팬들과 선수들, 스태프들은 모두 정말 대단해요. 드레싱룸 분위기는 영국과는 조금 다르지만, 저는 마음에 듭니다. 젊은 선수들이 나이 많은 선수들에게 보여주는 존경심이 굉장히 크죠. 저도 몇몇 어린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체육관에서 추가 훈련을 하거나 훈련 후 잔디에서 더 연습하는 등 모범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릴 때 웨인 루니가 저에게 했던 것을 떠올리며 말이죠. 제가 처음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뛸 때, 영하 5도였고 저는 장갑을 끼려고 했었어요. 그때 웨인이 말했죠. "안 돼, 우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야." 그는 또 저에게 "50경기 이상 뛰기 전에는 새 차 사지 마"라고 경고했던 것도 기억나요.

 

 

 



 

이 글을 통해 사람들이 저를 더 잘 이해하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몇 년 전, 어머니의 우울증과 제 자신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주었어요. 특히 축구 선수들이 많았죠. 네, 우리 직업이 꿈의 직업이긴 하지만, 우리도 그냥 사람일 뿐이고, 많은 선수들이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면 놀랄지도 모릅니다.

 

저는 제이든 산초에게 힘내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그가 맨유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자주 대화를 나눴어요. 또 다른 친구는 폴 포그바죠. 그가 16살 때 유나이티드 아카데미에 들어왔을 때부터 우리는 서로 통했어요. 저는 그 친구를 정말 아껴요.

 

많은 사람들이 폴을 판단하려고 하지만, 저는 항상 이렇게 생각해요. "정말 그를 사람으로서 몰라서 그런 거야." 만약 폴과 앉아서 대화를 해본다면, 그가 당신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 가장 겸손한 사람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축구에 대한 사랑은 엄청납니다. 그는 축구에 완전히 헌신하고 있어요. 개인 트레이너, 물리치료사, 요리사까지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니까요.

 

저나 폴이나 마찬가지로, 대중의 일부는 소셜 미디어에서 본 이미지로 우리를 판단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춤을 추거나 즐기는 모습을 보면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저 자신을 표현하고, 팔로워들과 소통하려는 것뿐이에요. 우리는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죠.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승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도전해 볼 거예요.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무언가를 이루고,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것.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저는 다시 그라운드에 섰고,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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